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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

ㅅrl벽 2013. 3. 6. 16:29

  세상의 소금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마태복음 5장 13에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고 한 말씀대로 이 땅에서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소금의 특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아무리 변해도 소금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단어로 소금을 번역하고 있지만 그 내용들이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 혼란을 주는 영향을 갖고 있다.

 

히브리어 단어로 “마흐라그흐”()로 불리는 단어는 ‘비뼈 조각을 내다, 가루로 부수다, 먼지처럼 사라지다, 비비다, 절이다. 같이 섞다’ 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렇게 단어의 뜻만 갖고 있다고 해서 의미를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문장 사이, 구문 사이에 서로의 단어끼리 연결하며 그 뜻을 분석해 가는 것이 성경해석학이라 할 수 있다.

 

소금은 바닷물 속에 있을 때는 액체로 되어 있지만 어느 고정된 장소에서 물기가 사라지면 작은 알갱이로 변해 고체로 남아 있게 된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능과 특성이 달라지겠지만 의약용품으로 아니면 화약에 첨가하여 사용되기도 하는 성분이지만 대부분 식용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지난번에 칼럼에 언급한 바가 있지만 세상에 소금이 되라는 의미는 천국의 맛을 내며 살아가라는 의미를 표명했다. 밋밋해지기 쉬운 세상살이에 소금처럼 맛을 내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되지만 천국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맛깔스러운 삶을 표출해야 내는 것이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에스라 4:14에 소금을 (먹는 고로) “믈라흐”(xl;m)라는 단어는 ‘먹고 살다, 생계를 유지하다’라는 의미로 천국의 맛을 한번만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겔 27:9, 27, 29, 욘 1:5에 나오는 ‘사공’이나 ‘선원’으로 “말라흐”(xiL'M)라는 단어는 소금과 선원, 사공이란 단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면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 4:19)는 말씀도 소금과 어부라는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속적이며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아주 적당하게 맛을 내야 하는데 소금의 양을 너무 많이 포함시켜 버리면 그 주변이 사막이 되고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도 소금기가 많은 땅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으려고 계속 심어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 5:13에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안에서) 짜게 하리요, “할리조”(a`lizw)라는 단어는 “할리에이스”(어부 a`liei/j) 할리유오오(고기를 잡다)는 단어가 서로 연결된 동의어들이다. 맛을 내기 위해 짠 성분을 넣어 적당한 맛을 내는 것처럼 어부가 고기를 잡아 공급하는 상황이라면 맛을 낸다는 것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

 

과거에 돈이나 화폐가 없었을 시대에는 돈 대신 소금으로 화폐 역할을 했는데 이 소금은 단순히 화폐로만 사용된 것만이 아니라 약속을 맺기 위한 하나의 징표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소금으로 맛을 내라는 것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처럼 천국의 약속을 이루어야 한다.

 

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드릴찌니라. 민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원히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순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모두 소금과 같은 존재로서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다뤄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다 소금을 쳐야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약속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귀중한 것으로 소금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소금이란 헬라어로 “할라스”(a[laj)라는 단어는 소금만 의미하지 않고 “신중”하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데 헤픈 소금이 아니라 아주 신중한 소금으로 모든 행동이나 말에 신중한 행위를 하는 값어치가 상당히 높은 소금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아주 싸구려 소금으로 값어치가 없는 행동이나 말로 격하시키는 소금이 된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구문에서 세상을 일반적인 지구 땅 덩어리를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존재”를 의미하는 “게스”(gh/j)라는 단어로 요한계시록에 많이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 존재는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의 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함부로 아멘하거나 할렐루야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도한답시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헤픈 기도를 해서도 안 되며 신앙의 결단을 위해 함부로 결정을 지어서도 안 된다. 또한 자기가 결정을 다 해놓고 일을 다 저질러 놓고서는 책임을 하나님께 떠맡기는 엉뚱한 짓도 해서는 안 된다.

 

‘맛을 내다’는 단어가 “아르튀오오”라는 단어는 “양념을 하다, 양념을 넣다, 준비하다” 뜻을 갖고 있는데 항상 맛을 내기 위해 준비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맛을 내며 살아가야 하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의 비밀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음식이라도 맛이 없다면 아무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보여도 쓸모없을 것이다. 따라서 천국의 깊은 맛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맛이며 신비로운 맛으로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표현을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맛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다.

 

천국의 맛을 낸답시고 거룩한 척도 하지 말고 의로운 척도 하지 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만이 천국의 맛, 진정한 소금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지 않고서는 신비로운 맛을 낼 수 없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고는 그 맛을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 쪽이나 사람 쪽에서는 아무리 맛을 내려고 해도 그 맛은 나오지 않는다. 그 맛을 지니고 있는 주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하며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었다가 함께 부활하는 가운데 그 맛이 나오게 되어 있다. 소금이 어떤 음식에 들어가서 죽어야 만 그 맛을 내듯이 우리도 죽어야 한다.

 

소금이 음식물 속에 들어가 배합되어지는 과정에서 녹는 것이 바로 소금의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목숨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소금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 우리도 소금처럼 죽어져야만 한다. 내 혼이 내 육과 영을 지배하고 있어 하나님의 임재아래 다스려져 하나님의 영으로 지배당해야 소금처럼 죽는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니까 일부 교회 중에 건강한 교회, 민주적인 교회, 투명한 재정, 이웃사회와 소통하는 교회,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 등 자신의 야심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 성공수단의 한 면모일 뿐이다. 소금의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 소금의 역할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무조건 살려내는 것이 소금의 사명이요,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하는 것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소금과 빛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산상수훈의 팔복에 이어서 나온 말씀의 본질과 원형을 찾아야 한다.

 

복음적으로 산다는 것이 율법적으로 사는 것보다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히려 율법적으로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쉽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주의 생명으로 살리기 위해서 가난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며, 온유해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만 증거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나타내기로 사생결단을 한 사람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소금 중에 수천도의 고열에서 익혀서 제조된 최상급 고가의 소금이 있다, 그러나 최상급의 소금이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엄청난 고열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련되어져 익혀져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