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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 내일을

ㅅrl벽 2012. 10. 10. 19:11

담임목사님 목회칼럼


오늘에서 내일을

만석교회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안식년을 미국에서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큰 은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장로님들께서 안식년을 통해 모처럼 휴식과 더불어 지나온 목회 일정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크게 배려해주셔서 미국에서 앞서간 교회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었음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교회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느끼게 해 주신 것은 오늘을 사는 이 시대가 결코 평안하거나 안정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이 시대 문화자체가 교회가 채워줄 수 있는 영적 기능들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시대는 참된 진리를 잃어가고, 인간에 의해서 세워진 거푸집에 현대인은 매료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조용히 하나님 성전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과학의 소리들이 하나님의 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자신들의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들은 외면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의 생각이 깊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생각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깊고도 높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앞의 현실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전체를 놓고 보시며 내일을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실존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대 문명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 놓은
현대문명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놓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세상문화에 점점 길들여지고 빠져들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며 진리의 말씀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젊은이들은 교회에 남아 있지 아니하고 다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참된 진리와 인생의 귀중한 삶이 무엇인지 교회에서 찾기 보다는 세상에서 찾으려고 하는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쌓는 바벨탑은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이들이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기도할 뿐입니다.
또한 우려되고 염려스러운 것은 기독교의 힘이 시대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타종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 영적인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저는 시대에 잃어가는 영적 지도력을 어떻게 극복하여 성도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해 줄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은 곧 이 시대를 향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저를 옛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가게 해 주셨습니다. 그곳에 필라등대감리교회가 있었는데 개척한지 일 년이 채 안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하시는 목사님은 그곳에서 두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가야하는 미국의 시골 마을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의 시골 마을들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 곳은 랑카스타라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몇 가지의 이유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골입니다.
우선 랑카스타에 있는 미연합 감리교회는 한국에 아펜젤러 선교사를 보낸 교회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그 교회 작은 한 여선교회에서 모금을 하여 보냈다고 합니다. 한국에 선교사를 최초로 보낸 것이 그 교회로서는 큰 자랑입니다. 시골의 작은 한 마을의 교회가 복음을 한국에까지 전해야 겠다는 헌신의 결과가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를 이루게 한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 교회는 지금도 부흥하고 있고 앞으로도 비전 있는 교회로서 거듭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2, 랭카스타의 또 하나의 귀중한 것은 아미쉬 마을입니다. 오늘날에도 저들은 조상들이 보여준 신앙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들입니다. 청교도들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곧 그들의 신앙 전통을 이어가려는 의도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오직 믿음 하나 가지고 신개척지에 와서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살아보려 했던 선한 의지를 그대로 이어받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구약 성서에 나타난 성막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관광객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작은 시골 한적한 마을이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마을로 가는 좁은 길이 자동차로 북적대었습니다. 특별히 밀레니엄 극장은 뮤지컬로 유명합니다. 창세기의 나오는 내용들과 인물들을 주제로 한, 그리고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 탄생에 대한 뮤지컬은 언제나 초만원을 이룬답니다. 시골 산속에 2천명이 넘게 앉을 수 있는 객석을 갖춘 뮤지컬 공연장이었습니다.

마침 방문하던 때에 요셉에 대하여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일인당 입장료로 미화 60달러를 지불하고 성경에 소개된 요셉의 이야기를 음악과 더불어 현장감 넘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성경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준수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볼 때마다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요셉에게 점잖게 접근하여도 요셉이 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협박을 합니다. 노예인 주제에 주인 마님의 요청을 감히 거절하다니 보디발의 아내는 분노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위협합니다. “너는 내 소유다. 왜 내 의도를 따르지 않아. 너는 내 손안에 있어” 그러자 요셉은 점잖게 대답합니다. “주인 마님, 저는 마님의 손안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의해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을 담대히 말합니다. 결국 요셉은 노예이기 때문에 감옥에 갇힙니다.

나중에 총리가 되어 곡식을 구하려 내려온 형들과 대면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주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안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다 이야기 합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기 때문에 종으로 와서 겪은 아픔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야기 하며, 이제 그 원망과 미움을 보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분노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아내의 한 마디 말에 요셉은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억제하고 형들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성경에는 요셉의 아내에 대하여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애굽의 이방 어느 종교 사제의 딸이라고 나옵니다. 그럼에도 평상시에 요셉은 아내를 감화 시킨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분노로 어찌할 줄 모르는 남편에게 한 마디 던집니다.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이제 형들에게 보여 주셔요.” 아내의 이 한 마디 말에 요셉은 냉정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물론 뮤지컬 대본을 쓴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그럼에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요셉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갖고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에 올바른 판단과 덕망 있는 삶을 나타낼 수 있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보복은 보복을 낳습니다. 북한에서 쌀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정부는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천암함 사건에 대하여 보복하려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아니한 것은 참으로 잘한 결정입니다. 우리가 믿는 진정한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름 아닌 사랑으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 없이 어찌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가장 크게 분노할 수 있는 자리에서 흉한 모습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원종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