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향기♡☞/,,,†,주님 삶 이야기

슬픈 이별....

ㅅrl벽 2013. 3. 17. 20:19

 

슬픈 이별....

슬픈 이별....

실제 모양의 관에 들어가서 두껑을 닫고 죽음의 상황을 체험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잠시동안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싦에 대해 더 진지함을 요구받고 자숙하는 기회를 가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죽음에 대한 기억을 하고 싶지 않거나 자기와는 아무상관이 없다는

자기 최면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의 장례의 상주로 지냈던 사년전을 시작으로 한해를 보내며

다섯차례의 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례를 치르면서도 정말 슬퍼서 통곡을 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이 이별의 아픔도 후에는 다시 만날 소망이 있었으니까요

막내 누나의 남편, 즉 나의 매형은 올해 꼭 예순이 되는 나이였지만 정말

건강하신 분이셨습니다.

처갓집 모든 사람들과도 다정하고 싹싹하여 작은 누나네 집을 방문 할때 면 으례히

매형이 모든 것을 챙겨주고 어떻게 해서라도 즐겁게 해줄려고 노력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강원도 동해에서 자수성가하여 이제는 편히 지내도 될법한데 근처 농토를 구입하여 농사도

직접 지으시고 옥수수, 마늘 등을 재배하시고 바닷가의 생선들을 직접 사가지고 손질하셔서

처남들에게 보내 주시던 분 이셨습니다.

작은 누나가 교회를 등록하여 올해 집사가 되었을 때 아직 함께 다니지는 않지만 교회까지

데려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장로인 막내 처남이 한상에서 식사기도 할때에도 두 손을 모으던 분이셨습니다.

그랬던 우리 매형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병명도 없으셨고 더욱이 아파본적도 거의 없으셨던 분이 근처 밭을 돌아보려 가셨다가

자기가 호출한 119에 실려 병원에 도착한지 30여분만에 심근경색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졸지에 벌어졌던 상황에 모든 식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월요일 저녁, 합창단 모임을 준비하는데 걸려온 전화...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에 가셨다는 연락에 아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 작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는가 봅니다.

갑자기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형님, 무슨 소리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아니 이런...”

덜덜덜 떠는 아내의 전화를 빼앚아

“누나 무슨 일이예요?...”

“이사람이 갔어... 숨을 안쉬어.... 엉엉...”

“의사는?...의사는 뭐래...도대체 뭐야...”

“의사가 죽었데...애들아빠가 죽었데...엉엉...”

“누나, 정신 바로 차려요...절대 정신줄 놓지 말고..기다려요...애들도 가고있고

나도 지금 출발한다....“

멍해 있는 합창단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와서 옷가지만 챙긴 채

강원도로 출발했습니다.

이미 온 식구들에게 연락이 된지라 서로들 확인차 전화들을 하며 경악해 합니다.

작은 누나가 걱정되고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때, 스치는 생각....

우리 자상한 막내 매형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이 떠 올랐습니다.

‘어떻게 해..?...“

아내도 그 사실이 떠 올랐는지 눈물을 흘립니다.

운전해 강원도로 올라가면서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한번도 쉬지 않았지만 피곤한 줄도

모르고 도착한 병원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머뭇 거렸습니다.

응급실인지, 장례실인지....

장례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고인의 명패속에 새겨진 매형의 이름....

찾아간 빈소에는 넋을 놓고 있는 누나와 조카들...

기독교 형식의 빈소에는 매형의 이름앞에 성도라는 직함이 써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위로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벌써 아내는 누나와 얼싸안고 통곡을 하고 있었고

조카들에게 그간의 상황에 대해 물으며 장례의 여러 절차를 일러 주었습니다.

누나가 다니는 교회에서 입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누나의 부탁에 따라 기독교장으로 하게 되었고 특별히 담임목사님께서

출타중 이신데 불구하고 교역자들에게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혹시나 했는데 매형은 교회 등록은 하시지 않으셨고 아직 믿음 약한 누나의

부탁으로 배려한 것이라 하십니다.

예배 절차를 지내고 장례를 마치기까지 여태껏의 장례식때 흘렸던 눈물의 배나 흘렸습니다.

어쩌면 교인들보다도 자상하셨던 우리 작은 매형이 구원을 얻지 못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고 타락했던 카톨릭의 면죄부를 구입 하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할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만날 때 마다 전하곤 하였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고, 건강하시니까 그렇게 간곡히 신앙을

권유 못한 자책이 밀려와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명도 없고 한번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으며 예수그리스도,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값으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 이름 외에는 구원을 받을만한 이름을 주신적이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더 자주 권면하고 전해야 했었는데... 누님이 교회다니며 집사가 되었다기에 이제 곧 매형도

따라 다니겠구나...그런 생각만 하였는데...

그 정신없는 때에도 교회에 기독장으로 부탁한 누나의 마음이 짠 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장례식의 이별은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의 천국 환송식은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그 경험이 있었던 나에게 주님을 믿지 않았던 그 장례의 이별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이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