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범죄
자료제공/최경옥님
[삼하11:1-15]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2)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3)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6)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의 어떠한 것을 묻고 (8)저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13)다윗이 저를 불러서 저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저가 나가서 그 주의 신복으로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14)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부쳐 요압에게 보내니 (15)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1,12장은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나오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으로 밧세바 사건이 나오고 있다.
밧세바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을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뒤로 하고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다윗같이 훌륭한 자가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가?
그것도 간음과 살인이라는 세상에서 손가락질 하는 그런 죄를?
인간은 이렇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하며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그는 변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 맞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다윗은 죄를 지으면서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들도 죄를 지으면서 그것이 죄인 줄 모를까?
죄를 짓는 동안 마음에 괴롬을 느끼는 자도 간혹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죄가 드러나기 까지 우리들은 그렇게 심각한 죄라고 생각지 않고
자기의 죄를 합리화 할려고 하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윗도 나단 선지자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확실히 알게 된다.
왕이기에 그것을 합리화 시킬 수 있고 권력으로 무마할 수 있지만 그 잘못에 대해서
깨닫고 돌이키는 것은 대단하다.
왕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는데 그것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은 대단하다.
*하나님에게 신실한 자이지만 죄를 지었다. 인간이기에 그러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시51편을 보면 그의 신앙고백은 조금 이상하다.
[시51:3-5]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자기의 죄를 안다고 하면서 범죄한 내용을 말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용서해 달라는 말이 없다. 그리고 4절에 주께만 범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에게 지은 죄가 없는가?
5절을 알아야 다윗의 마음을 알게 된다.
3절에 내 죄과를 아오니 하면서 자기 죄를 아는데 그것은 자기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며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죄 덩어리로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자기의 죄로 인해서 침상이 뜨도록 회개한 자인데 자기 죄를 모르겠는가!!!
*세상은 자기 죄가 드러나기 전에는 모두 착한 사람이다.
세상과 나는 내가 저지른 죄의 행위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그것은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은 근본 적으로 죄를 지을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잇는 자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들키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는 착한 사람인 척 한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 것은?
우리들도 나는 죄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삶에서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윗에게는 이것을 깨달을 수 있는 커다란 동기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동기가 있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확신하게 된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신앙에 전환점이 온 것이다.
지금 다윗의 상황에서 자기가 어떤 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백을 할 때 그것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것이냐 근원적인 존재 자체에 대한 것이냐?
깊은 참회의 고백이 나오는 것은 근원적인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합리 화 시킬 수 없는 그런 죄악이 있을 때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된다.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헷 사람 우리아와 대조시키고 있다.
11,12장에서 대조시키는 것이 7번 나오는데 그때 마다 헷 사람이라는 출신을 내어놓는다.
헷 사람은 가나안 사람이다.
다윗에게 너는 가나안 사람인 이방인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아 는 ‘여호와의 불꽃’‘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이방인인 우리아는 왕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이 고생하는데 나만 편할 수 없다고 하는 기특한 충신인데 유다인인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비교가 안되는 형편없는 모습이다.
*흉악한 다윗 같은 자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을 수 있는가?
오늘날로 말하면 짐승 같은 자가 어떻게 목사가 되고 집사가 될 수 있는가
정말 이방인 보다 못한 자가 은혜를 받고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그런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단 말인가?
연약한 자들은 정말 시험 들기 좋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흠이 있고 죄인이고 부족한 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은 부인을 팔아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는 자였는데 이런 자가 은혜를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어 예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신기하게 이상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저런 다윗을 왕 삼으신 하나님은 누구인가
*자신의 속을 들여다봅시다.
[롬4: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우리는 이렇게 밧세바 사건을 일으키고도 은혜 받아 찬양하는 다윗의 후손이기에
우리의 피 속에도 다윗처럼 기회가 되면 그런 죄를 저지를 흉악성이 내포되어 있다.
다만
언약 가운데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은총 받고 버림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한다.
정말 내 자신의 실체를 안다면 세상 사람을 손가락질 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저런 나쁜’ 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나도 죄악덩이로 출생하여 지옥가야 마땅한 자인데 하나님의 긍휼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알아서 감사와 찬양만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제사장 역할로 선택 받은 것처럼 택함 받은 우리들도 저들을 향해서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한다. 제사장 대신 예수님처럼 저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호소해야 한다.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호소해야 한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은 본색을 알게 된다.
다윗이 과거에 행한 선한 일들은 죄을 지을 수 있는 본성을 품고 한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다.
우리도 선한 일을 하지만 그 속의 중심에는 정말 사랑에 취해서, 좋아서, 만족해서 하는가?
나의 행위 뒷면에 어떤 죄악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내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나를 드러내며 인정받기 원하는 방편으로 하고 있는가?
그것을 감추고 겉으로 보기에 선하고 좋은 일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낸다.
너희 속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동은 이렇게 한다.
이것은 첫 아담의 죄가 내려가 악의 결과가 가인의 죄가 된다.
*죄의 소원은 나에게 있다.
[창4: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최초로 범죄한 인류의 열매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죄의 소원이 있음을 우리는 동의해야 한다.
탐욕과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가득한데 감추고 선한 모습을 겉으로 보이고 살아가는 자들이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며 보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밧세바 사건은 다윗에게 신앙생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우리에게도 밧세바 사건과 같은 분기점이 있어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어 나의 수치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므로 내 자신을
내가 알아 나가며 나의 근본이 죄악덩어리 임을 알아야 한다.
[간음죄를 저지른 자를 책망하지 말고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억누르며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므로 저 사람이나 나나 모두 같은 죄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면 절대 신앙에 분기점은 없고 고쳐지지 않는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에 젊은 여자를 절대 취하지 않는다.
다윗에게 분기점이 없었으면 솔로몬 이상으로 많은 후궁을 거느렸을 것이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속이며 나오는 외식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겉으로 믿음 좋은 것처럼 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지 인간 적인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드러내는 자도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자로 바뀐다.
앞선 선진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수치스럽다고 합리화 하지 말라.
하나님이 드러내신 것이니 그대로 드러내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울은 버렸지만 나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시었다.
버리지는 않되 매를 때린다고 하시며 막대기와 채찍으로 하신다.
다윗도 승승장구는 끝나고 이제 막대기와 채찍만 남았다.
채찍 맞은 그의 영성은 날로 깨끗해진다.
[오늘날도 외적으로는 신앙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며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을 통해서 그를 드러나게 하실 때 그 사람의 태도가 어떠한 가를 보아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드린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이런 말을 하며 드리는 자들도 있다.
‘나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쓸모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알고 난 다윗이나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된다.
다윗은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라고 하였지만 중심에는 그것이 아니였음을
자신의 사건을 통해서 알고 ‘나를 새롭게 하여 주소서’
[시 51:7,10]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자신이 새로워져서 왕 다운 왕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
*죄의 소원을 품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나타날지 모른다.
천사 같은 사람이 갑자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 사람이’ 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다윗을 보고 놀랜다.
‘기름부음 받고 사울 왕에게 그렇게 했으며 골리앗을 향해 멋진 고백을 한 다윗이 어떻게?’
우리는 죄를 품고 있는 인간을 알아야 한다.
‘목사가 죄를 지으면 놀란다’ 어떻게? 인간 속에 그런 모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죄가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은혜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너의 죄 소원을 다스리라고 하신다.
죄의 소원을 다스리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뿐인데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
선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일만 악의 뿌리이다.]
인간은 부족한 삶과 위기에 처한 삶이 복이 될 수 있다.
오늘 삶도 감사합니다.
오늘 삶에 여유가 있고 풍성하면 감사가 줄어든다.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의 의식을 돌이키고 다윗처럼 처절하고 상한 심령으로 돌아가서
나를 새롭게 해 달라고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향기♡☞ > ,,,†,주님 삶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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