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찾았습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절)
믿는 자에게 ‘믿음이 있다 없다’의 기준이 무엇인가? 믿음의 여부를 결정짓는 시금석으로 측정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의 행위로 결과를 보려고 한다. 과연 믿음의 행위를 보고 결정지을 수 있는 사안인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자칭 이긴 자라고 자처하는 쓰레기가 있는 모양인데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그런데 가관인 것은 한국교회가 이를 대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며 신문에다 광고를 내거나 소문을 내게 해서 어느 곳에 모이게 하여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오도록 유도 하고 있다.
에베소 교회에 경고하는 말씀은 이기는 자는 처음 사랑(계2:4) 곧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느냐 나가지 아니하냐는 영적 싸움이다. 그리스도를 붙잡았다는 뜻은 바짓가랑이 붙잡듯이 붙잡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내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것을 붙잡힌 바가 된 것으로 의미한다.
그런데 계2:5에 어디서 떨어졌는지 먼저 생각해야 되는데 그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셨다고 하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처음 믿었을 때의 추억도 되겠지만 사실을 창세전에 나를 존재하게 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귀 사탄은 이런 망각증을 불러 일으켜 창세전에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아예 깡그리 잊어먹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인 것이다. 처음 사랑의 근본, 기원, 시작이 되신 그 분과 떨어진 것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음성부터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찾고 있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일반 교인들은 어떤 신앙적인 업적이나 공적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려고 한다. 종교적인 행위로는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지 않고 회개만 하면 되는 줄 안다. 회개의 근본적인 본질을 모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면 되는 줄 안다. 물론 그런 회개의 결과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회개라는 자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상태를 회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과연 어떤 회개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3340 metanoew(메타노에오)=3326+ 3539이 연합된 단어 3326 meta(메타)연합을 의미하는 ‘함께’라는 단어와 3539 noiew(노이에오)깨닫다. 이해, 인지, 생각, 숙고하다 는 단어의 합성어 헬라어 단어를 분석하면 죄를 뉘우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진리를 깨닫는 차원을 진정한 회개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졌습니다. 살려 주세요’ 하는 무작정 과거의 죄를 낱낱이 아뢰고 옷을 찢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회개는 죄와 사망을 이기는 회개다.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이런 회개를 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씀이다. (계 2:5)
신앙적인 행위로 수고를 하고 인내와 분별력이 있어 병아리 감별사처럼 맞다 안 맞다 거짓된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 맞춰도(계2:2)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완전 꽝이다(요15:5) 얼마든지 혼적으로도 은사를 사용하여 예언을 할 수 있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 아버지를 빙자하여 은사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임재 했거나 예수님이 등장한 줄로 호들갑떨지 마라. 금이빨이 되었다고 금싸라기가 손바닥에 떨어졌다고 할렐루야, 놀렐루야 외치고 있는데 진정한 은사를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임을 명심해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야만 은사의 본질과 목적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금이빨이나 금싸라기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없다고 단언하지 마라. 그런 은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서 이긴 것이 진정한 은사라 할 수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그리스도만이 승리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에서 함께 승리를 만끽하고 편승하는 것뿐이다. 내가 힘들게 싸워서 승리하는 차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군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장서서 싸우는데 곁다리로 이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상태에서 정죄할 수 없는 안전지대에 따라가며 유일하게 이길 수 있도록 이미 작전을 다 짜져 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찾는 것이며 그곳에 심겨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바로 처음 사랑을 찾는 것이다.
죽고 난 뒤에 천국에 가서 먹는 생명나무가 아니다. 생명나무가 무엇인가? 잠언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나무다.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의 부활(요 5:29)과 생명의 떡이 되고(요 5:35) 참된 양식과 음료(요6:55)가 되시는 분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찾는 것이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요한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먹으면 계시록의 작은 책을 먹게 된다.(계10:10) 요한복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요한계시록을 거론한다면 죽으려고 환장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요한서신서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특별한 사람에게 해석하도록 주어진 책이 아니다. 보여주시는 대로 읽기만 하면 된다. 미래만 언급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바로 적용하며 실천해야 되는 아주 중요한 책이다. 그런데 자기가 요한계시록을 특별하게 깨달았다고 강의하고 세미나를 여는데 올바르게 알고 했으면 한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천국에 가서 먹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백전백패의 신앙으로 전략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굴레 안에서 참 회개와 세례를 모르고 신앙의 노예나 꼭두각시로 해괴망측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찾는 것은 주님과 연합되어져 있어야 하는데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면 잃어버린 것이다. 내 안에서 잠들어 있는 그 분을 찾아야 한다. 그 분의 말씀과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붙잡고 끝까지 따라가야만 한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버지의 형상화되며 아버지의 영광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게 신앙의 즐거움의 극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승리가 바로 이것이라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지금 먹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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