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주님의 부탁
요한복음을 읽다보면 예수님이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많은 제자들이 다 도망하고 없었는데 왜 요한은 그 자리에 있었을까?
왜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른 복음서에 등장했던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던 구레네 시몬의 내용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요한...
그는 기회주의자 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정권을 잡으면 한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강렬히 품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하자 자기가 따르던 선생을 버리고 바로 예수를 따랐던 사람 이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모친을 앞세워 청탁 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야심가 였습니다.
또한 그의 불같은 성격은 예수님이 지어준 별명이 보아네게(우뢰의 아들)라고 할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불로 태워 죽여야 직성이 풀릴만한 심성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부터 요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바리새인과 제사장, 예수님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잡히신 후에 이제 제왕의
위엄으로 선포하리라 기대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없어도 그 밑에서 그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선생님께서는 홀로 남은 자기를 높이어 오른팔로 쓰시리라 믿으며....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냥 맥없이 얻어맞고 찢기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결국은 사형을 언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에 실망하여 예수님의 반대편으로 터덜 터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 번개 같이 스치는 생각.....
‘그래 십자가에 달릴 때 시작 하실거야.... 그의 권능으로 모든 무리들을 굴복시키고
예수님의 시대를 여실것이야....‘
그는 한걸음에 달려갑니다.
헉헉거리고 달려 갔을때, 이미 예수님은 피투성이 된채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처절하게 죽어가고 있는 에수님의 모습은 그가 그려왔던 메시야가 아닌
한낱 초라하고 측은한 실패자 였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울고있는 여인들, 눈을 뜨고 바라보시던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면서
자기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말 합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어서 그는 마리아를 자기집에 모십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요한이 앞장 서서 도착 합니다.
이미 임종을 지켜보았던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무덤 앞에 먼저 도착한 요한은 차마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면, 이제 전능한 모습으로 다시 사셨다면 양다리 걸치고
예수님을 이용하여 권세를 잡으려 했던 자기의 야욕을 다 아시고 계실텐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저하고 있을 때 이어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으로 들어가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곳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따라 들어갔던 요한도 함께 보았으나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한 채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맹세했던 베드로, 그러나 세 번이나 부인하고 풀이 죽어있던 베드로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향한 말씀이 계실 때에도 요한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베드로가 물어봅니다.
“주님 저 요한은 어떻게 되나요?”
만찬석에서 품에 안겨 주님, 주님을 파는자가 누구오니까? 하고 묻던 요한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가 결코 주님을 판 제자와 다를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올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
싸늘한 예수님의 대답이 그를 더 슬프게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도한 후에 제자들에게 불같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제는 확실한 주님의 뜻을 알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어 제자들이 순교하기 시작 합니다.
베드로가 순교하고 바울도 순교하고 안드레도... 예수님의 직전 제자들이 다 순교할 때 까지
그는 마리아와 함께 피신하여야 했습니다. 살지도 못하고 순교하지도 못하는 자기의 모습이 힘이 들었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이제 유배되어 옛일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후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이
자기를 향한 말씀 이시란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 없이 외치시고 가르치셨던 말씀들이 모두 자기를 향한 말씀 이었고
그 참혹한 십자가의 모습이 자기의 죄로 인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한 일서에서 이렇게 선포 하였습니다.
“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자는 하나님을 알지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사랑은 여기 잇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하도다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 지느니라...“
그리고 마리아를 부탁하신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장가 가지도 못하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였으나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기억하라 하신 그 뜻을.....
그 후에 그는 그의 글에 자기를 “사랑하는 제자”라고 기록 합니다.
요한에 대하여 전반적인 개요를 설명하시는 극동 방송을 들으며 적어봅니다.
오늘날 나에게 부탁하신 마리아는 누구 일까?
내가 책임지고 불편하더라도 함께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해야 할텐데...
나는 너무 소홀 하게 대하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맡기신 마리아 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여린 삶속에서
요한에게 부탁하신 마리아가 우리가 늘 말씀에서 대하는 형제 자매임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내 삶조차도 헉헉대는 못난 내 믿음이 감당할수 없음을 고백해보니다.
우리의 삶에 평안을 원하시며 재앙을 원치않으시고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시는 하나님의 생각,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고 하신 말씀을 읊어 봅니다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조차 유익을 구하던 요한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귀한 보혈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주님!!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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