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향기♡☞/,,,†,믿음♡ 은혜글

만남

ㅅrl벽 2013. 3. 27. 20:18

 

  만남

바울은 아덴에 갔을 때 온 성이 우상으로 가득 차있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단도 있었습니다. 그는 “당신들에게는 종교심이 많군요. 내가 보니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단도 있던데 내가 그 알지 못하는 신을 당신들에게 알게 해 주겠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덴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열심히 듣기는 했으나 복음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짐승과는 달리 영혼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에게는 종교심이 없지만,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사람에게는 종교심이 남아 있어 본능적으로 신을 찾아 헤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오직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참된 종교와 거짓종교로 말입니다.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는 거짓종교입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신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자기들의 지식과 지혜로 만든 것들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찾아 내려오셔서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주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인간을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만남은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가수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즈음에 우리나라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눈물겨운 장면이 거의 매일 텔레비전을 타고 온 국민을 눈물바다에 빠뜨렸습니다.

 

그때 우리 동네에 어떤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북쪽에 가족을 둔 자였는데 홀로 남쪽으로 내려와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곧 통일이 될 거라 믿으며 홀로 지냈는데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갈수록 통일의 기미는 희미해지고 점점 더 철조망은 견고해져 갔습니다. 마침 한 마을에 시집을 못 간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둘은 주위 사람들의 중매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석녀라서 언니의 막내아이를 아들삼아 기르며 살았습니다.

 

<만남>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즈음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북쪽의 가족을 만나고 싶은 바람으로 수척해졌습니다. 이를 눈치 챈 착한 아내는 남편에게 이산가족상봉을 신청하라고 부추겼습니다. 남편은 새 아내에게 미안해하며, 고마워하며 명단을 신청했습니다. 신청한 후 몇 년이 흘러갔습니다. 신청자가 많기도 했고 한 번에 많은 수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애를 태우며 자기 차례가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남편은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드디어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는 그의 차례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우리를 만나면 눈물바람을 하며 “우리 영감이 북쪽의 가족을 만나고 죽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여기가 아프지는 않을 거구만”이라고 말하면서 자기 가슴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의 만남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 옮겨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만남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의 만남, 창조주와 피조물의 만남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만나려고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예수를 만난 사람은 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습니다.

 

이 만남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부여받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였고,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이방인의 전도자가 되어 기독교는 그의 등에 업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고 〇〇교회의 직분자가 되어 이 지역의 복음화에 헌신하는 하나님의 영적 군사가 되었습니다. 나를 만나주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립시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 역시 아름답고 찬란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대역전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던 어부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 깊은 사고력과 명징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평생을 어부로 살면 사고력이 얕다거나 지혜가 모자란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므로 다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경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이 임의대로 만든 교훈의 책일 뿐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이 택한,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살았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충만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한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한 일이 많습니다. 한 백부장은 자기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 엄청 칭찬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모범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일조를 한 만남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는 어려서 이웃집에 사는 5살쯤 많은 언니로 말미암아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 잘못 되어 한쪽이 불구인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한 한 팔로 모든 집안일을 다 했습니다. 지능이 낮아 나와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인가부터 언니는 교회에 갈 때 우리 집 대문간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렀습니다. 나는 밥을 먹다가도 그 소리를 들으면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에 그 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2학년이 되었을 때 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두 분이 집사님이었습니다. 한 분은 음악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과학선생님이었습니다. 두 분은 부임하자마자 기독학생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매 주 목요일 방과 후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어느 날은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모임이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큰 딸이어서 집에 가서 저녁밥도 지어야 하고 동생도 돌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너무 늦게 귀가하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된통 혼났습니다. 하마타면 학교를 중단할 뻔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너 그렇게 학교 다니려면 학교 때려 치워라”하고 추상같이 명령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다른 아이들은 예배실로 가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며 볼이 퉁퉁 부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물론 몇 주 후에는 아버지 눈치를 살살 보면서 지혜롭게 시간을 조절해가며 다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만요.

 

공부사범대학에 들어가서는 C•C•C 순장에게 매 주 한 두 차례씩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1학년 때에는 C•C•C에서, 4학년 때에는 한사랑선교회에서 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을 복음화시키는 전략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첫 발령을 받자마자 그 지역 교회의 중고등부를 맡아 지도했으며 학교에서도 여러 학생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나의 중학교 때 두 선생님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그들처럼 학생들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로 인하여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는 제자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근무하던 지역의 〇〇교회의 중고등부를 지도하면서 전에 그 중고등부를 맡아 지도하던 남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그곳에 있을 때 군대에서 제대하여 고향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를 신축하기도 했는데 그는 물불가리지 않고 교회 건축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내가 만난 남자들 가운데 가장 순박하고 착해 보였습니다. 특히, 믿음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프로포즈를 하여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와의 결혼으로 나는 자격이 부족하나마 사모가 되었습니다. 학교에 근무할 때 학생들은 얼마 후에 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됩니다. 내가 사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정말로 사모세요? 말도 안 돼요”라고 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빙긋이 웃습니다. 그렇단다, 얘들아. 나 같은 사모가 없으란 법이라도 있니? 왜 그럴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어쨌든, 나는 농촌교회의 사모가 되어 연로하신 성도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섬깁니다. 내가 부모님에게 잘못했던 것을 반성하며 영의 어머니로서, 영의 딸로서 그들을 대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남편과 함께 주일오후예배가 끝난 후에, 봄이 오자 서울의 아들네 집에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훨훨 날 것 같은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오신 집사님을 심방하러 갔습니다. 겨울동안 비워둔 방은 썰렁했습니다.

 

오랫동안 불을 피우지 않았던 연탄아궁이는 불이 잘 붙지 않아 여러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이제 봄이 와서 그리 춥지 않으니 전기장판만 켜고 지내면 괜찮겠다며 만류하지만, 목사님은 아직은 추워서 안 된다며 연탄불을 피웠습니다. 연탄불을 피우는 동안 나는 집사님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겨울에 너무 추워서 파가 다 얼어 죽었노라는 말에 이웃마을에 사는 나의 친정어머니가 비닐하우스 안에 묻어둔 파를 얻으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반기며 파를 뽑아 주었습니다. 내가 사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섬김을 하며 사는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너는 사모라도 되어야 조금은 섬기며 살다가 생을 마치지 않겠는가, 하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