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독서법
이 글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오는 월간 QT '굿모닝 지저스' 2007/4월호에 실린 서재석씨의 글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고난주간을 전후해선 평소에 잊고 지냈던 십자가와 성육신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삶 가운데 실천을 다짐하고 모색하는 경건독서가 유익한데,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쯤 맘먹고 해 보면 어느 해보다 알차게 보내면서 영적 성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가장 고전적이고 표준적인 독서는 복음서 중 하나를 골라 읽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이 복음서만큼 생생하게 잘 그려진 책이 또 어디 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복음서 통독은 잊혀져 가고 있다. 특별히 평소와는 다르게 한 복음서를 단번에 그리고 소리 내서 읽어 보면 새롭게 와 닿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너무 흔하고 쉬운 방법이라 그냥 넘어가는 게 유일한 단점이자 복병이지만 말이다.
둘째, 때가 때이니 만큼 십자가에 집중해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이번에 20주년 기념판이 나온 존 스토트의 모던 클래식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순절 독서용으로 나온 김영봉의 신간 '가상칠언 묵상'(이상 IVP)이 크게 도움이 된다. 십자가의 의미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탐구하려는 열정과 열심으로 이 책들을 펴면 신앙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맛볼지도 모른다. 스토트의 책은 본문만 680면이 넘어 조금 두껍고 딱딱해 중도 포기 유혹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완독하면 누구나 '최고의 책'으로 손꼽게 될 것이다.
셋째, 조금 색다른 방법은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드린 이들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고난주간에 읽는 것이다. 성경본문과 십자가 자체를 묵상하는 독서에 비해 조금 가벼워 보이지만, 십자가를 따르는 삶을 살고 자신의 전부를 헌신한 이들의 삶이 전해주는 감동은 정말 크고 풍성하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 분야는 워낙 좋은 책이 많은데, 작년에 나온 책 가운데 한 세기 전 중국 서남부 윈난성에서 일했던 제임스 O. 프레이저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그린 '산 비'(Mountain Rain, OMF)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 고난 주간 생활 지침
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신 것을 묵상합니다.
2. 매일 새벽 기도와 주중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고난 주간을 보냅니다.
3.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합니다.
4. 오락과 유희를 삼가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한주를 보냅니다.
5. 싸움, 미움, 다툼, 혈기, 험담, 불평 등을 삼가합니다.
6. 가정 예배를 통해 가족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되새깁니다.
7. 과소비, 사치, 낭비 등의 무절제한 생활 습관을 삼가합니다.
8. 이웃에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참사랑과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9.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모이기에 힘씁니다.
10. 예수님께서 돌아신 금요일, 하루 한끼 이상 금식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성전 청결의날
예루살렘 입성은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구원의 역사가 시작됐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수난의 시작입니다. 그동안 유대땅의 변방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들에게 하늘나라 소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백성에게 풍족한 먹을거리로 선물을 주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병들고 소외당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의 선물을 병 고치는 기적으로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인간의 상식과 지혜로 볼 때 일종의 ‘기적’이라 표현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은총일 뿐입니다. 갈릴리로 상징화된 예수님의 선교무대는 이제 권력과 부와 상류사회의 상징인 예루살렘으로 옮겨옵니다.
우선 예수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은 병들었습니다. 상당히 곪아버린 말기의 암환자 같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도록 축복받은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한 때문입니다. 병든 자가 고침 받아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구원 받듯이 성전도 부패와 타락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듭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환전소가 되고 물건을 사고파는 악덕시장으로 변했기에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율법이라는 미명하에 기득권자들의 자기 보호 체제와 이념으로 화석화되다보니 그 속에 정작 살아움직여야 할 하나님의 영이 거할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성전 건물이 휘황찬란한 장식과 호화스런 내부시설로 가득차다보니 성전 속에 살아 있어야 할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인격의 인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군상의 부패 본거지일 뿐입니다. 당연히 새로 지어져야 합니다. 기도가 충만한 교회,하나님의 신령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로 변해야 합니다. 교권주의적 껍질만 앙상하게 우뚝 서 있는 성전이 변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자유가 넘실거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은 아니더라도 시냇물처럼 흐르는 곳으로 탈바꿈해야 옳습니다.
어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의 교회들을 보고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적인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크고작은 축복 환매 내지 구매시장으로 변질된 한국 교회의 모습은 아닐까요.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율법주의적 교만과 세속주의적 욕망이 성전 개혁을 맞았듯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성직자와 교회 평신도 지도층의 기득권 보호속에 성령의 생동력이 말라가고 성도들의 참인간다움도,참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도 사라져버린 앙상한 세속 건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은 다윗왕의 후광과 지속을 바라는 정치적 메시아로 환영했고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그 예수를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탐욕의 억압생활을 견뎌야했던 이집트에서 출애굽시킨 모세의 자손인 메시아를 바라지도 않았지요. 단지 이스라엘 민족을 통일시켜 통일왕조를 이룬 다윗,그리고 솔로몬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바랐습니다. 로마의 억압 통치를 벗고 독립된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어줄 정치적 메시아를 바라며 ‘호산나’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새끼나귀를 타고 왕으로 입성하시는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전 인류,전 세계의 회개와 청결을 통한 구원의 메시아로 등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세속적 기대치와 하나님의 성스러운 구원 계획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었습니다. 세속주의는 하나님의 성스러움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응답했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유대인의 왕’으로 굴레를 씌워서 말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메시아는 십자가 사건에서 보듯이 스스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 되어 그 위에 회개한 죄인들을 태우고 부활의 그날을 향해 가십니다. 그 죄인들 속에 우리 교회도 동승합니다. 진정 부활의 생명을 얻기 위해 십자가의 길,회개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야 할 시점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이시여,어서 속히 우리 가운데 오시옵소서. 호산나.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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